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 제국주의 (문단 편집)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 남오세티야 전쟁 이후 러시아는 동구권 및 구 소련 구성국을 상대로 자국의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확대해나갔다. 이러한 러시아의 움직임은 러시아의 주변에 위치한 국가들, 특히 동유럽의 구 공산권 국가와 [[발트 3국]]은 '''역사적 [[PTSD]]'''라고 부를 만한 공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남오세티야 전쟁 이후 이러한 대립이 무력을 동반한 큰 충돌로 터진 곳은 러시아와 역사적 접점이 많은 [[우크라이나]]였다. 1991년 독립한 이후 우크라이나는 서북부를 중심으로 한 반러 세력 및 친서방 세력과 동남부를 중심으로 한 친러 세력이 강하게 정치적으로 대립하였다. 따라서 정권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외교 정책도 친서방과 친러를 오가는 유동적 행보를 보였다. 그러던 중 2014년 친러 성향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대통령]]은 러시아가 구상하던 [[유라시아 연합]]의 일원으로 관세동맹에 관련된 경제지원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부패]]와 무능으로 인기가 떨어진 야누코비치 정권에게 품은 불만이 터지는 도화선이 되었고, 결국 야누코비치는 2014년 2월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파면]]되었다. 이렇게 우크라이나에서 민중[[혁명]]이 발생하자 러시아는 큰 위협을 느꼈다. 우크라이나가 다른 국가들처럼 러시아와 심하게 대립하진 않았고[* 물론 [[잠가라 밸브]]와 같이 경제적 이권을 두고 다툼이 꾸준히 있었지만, 대놓고 NATO에 가입한 [[발트 3국]]이나 미국 무기로 재무장한 [[조지아]]에 비하면 비교적 큰 충돌 없이 잘 지내는 편이었다.] 러시아 또한 무조건적으로 타국의 [[민주화]] [[시위]]에 개입하려 하지는 않았다. 2010년 [[키르기스스탄]]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자, 러시아는 당시 대통령 아키예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사실상 정권을 몰아내도록 방조했다. 하지만 야누코비치가 물러난 우크라이나는 [[반러]] 친서방 국가가 될 것이 뻔했는데, 푸틴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너무 가까웠고, 무엇보다 과거 [[2011년 러시아 총선 사태]] 당시와 같이 정권에 대한 불만을 돌리고 자신의 정치적 자산인 러시아 민족주의를 자극할 필요가 있었다. 장래 우크라이나에 반러 친서방 정부가 등장할 것이라고 판단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던 러시아계의 국민감정을 자극해 [[크림 반도]]를 군사적으로 병합했고, 우크라이나 동부의 반우크라이나 [[분리주의]] [[반란]]을 조장하여 군사적으로 개입하였다. [[돈바스 전쟁]] 항목 참조. 군사적으로 막대한 가치가 있는 크림 반도를 병합함으로써 푸틴은 소련 해체 이후 처음으로 옛 영토의 일부를 수복하는 데 성공했고, 이로써 국내 정치에서 기존에 협력관계이던 엘리트들을 지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절대적 지위를 얻었다. 이때부터 서방도 가만 있지 않았다. 크림 반도 병합 이후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에 본격적으로 경제제재를 걸면서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웠고, 생각 외로 반군이 선전하지 못하면서[* 크림 위기 이후 [[오데사]], [[하르키우]] 등지에서 지역 청사 점거 시도가 있었으나, 대부분 우크라이나군과 경찰에 진압되었다.][* 당시 우크라이나군 또한 초반에는 가용병력의 반절도 동원하지 못하고 그 병력마저 제대로 무장을 못시키며 참혹한 상황들을 연출했지만, 중반이 지나면서부터 각성한 모습을 보여줘 해당 사건들을 주시하던 해외로부터 '의외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 이후부터 몇년간 우크라이나는 꾸준히 반군(과 반군으로 변장한 러시아군)과 싸우면서 군체계를 일신하고 상비군을 10만명 중반대로 늘리며, NATO식 훈련을 받는 등 사실상 서방군대로 체제를 전환했다. 이때의 경험과 대비는 2022년에 일어나는 전면전에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의 공세로부터 버티며 장기전을 주도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우크라이나와 어정쩡한 상황을 이어갔다. 러시아가 선제공격을 가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면서까지 대립각을 세웠다. [[돈바스]] 지역의 '독립, 즉 [[돈바스 전쟁]]'을 계기로 우크라이나 내 친러 세력은 이탈하거나 몰락했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일부 지역의 [[러시아어]] 공용어 정책을 완전히 폐기하고 자국에 남은 러시아어 유래 지명을 갈아치우는 정책을 취하며 우크라이나 [[내셔널리즘]]을 강화해나갔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위협을 보고 이를 막기 위해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가입하고자 했고, 이를 구실로 러시아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2022년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2022년 우크라이나를 향한 [[선전포고]]문에서 우크라이나는 나라로서 성립한 적이 없고, 소련의 임의적인 연방 구성국 국경 설정은 이상주의적이고 무책임했다며 강도 높게 비판함으로써 러시아 [[패권주의]]적 인식을 드러냈다.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전한다면 과거 소련의 영향권을 회복하는 초석이 될 수 있겠으나, 우크라이나 점령에 실패할 경우 우크라이나는 국가정체성과 관련된 내부 갈등을 완전히 봉합하고 러시아와 완전히 별개의 [[국민국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